효율은 오랫동안 일의 미덕이었다. 같은 결과를 더 적은 시간에,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적은 사람으로. 자동화는 그 미덕을 기계의 속도까지 끌어올렸고, 이제 AI가 그 끝을 보여주는 중이다. 어제까지 반나절 걸리던 일이 한 문장으로 끝난다.
그런데 그 문장을 입력하고 나면 묘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손이 비는 만큼 질문이 무거워진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 애초에 이게 풀 만한 문제이긴 한가. 효율이 다 같이 좋아지는 세계에서, 일의 값어치는 효율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갈린다. 그 다른 곳이 어디인지를 따라가 본다.
효율은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약속하지 않는가
효율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정해진 목적지까지 더 적게 들이고 도착하는 능력이다. 무게는 '정해진'이라는 말에 실려 있다. 효율은 목적지를 묻지 않는다. 목적지가 주어졌을 때 거기까지 가는 길을 짧게 만들 뿐이다. 노를 더 빨리 젓게 해 주는 일이지, 어느 섬으로 갈지 정해 주는 일이 아니다.
자동화와 AI는 이 노 젓기를 사람 손에서 떼어 냈다. 반길 일이다. 팔이 아프던 일을 기계가 대신 하니까. 다만 노가 빨라졌다고 더 좋은 섬에 닿지는 않는다. 빠른 배는 잘못된 섬에도 빨리 닿는다.
사람의 노동을 덜어 주는 것과 새로운 값어치를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사건이다. 앞엣것은 비용을 줄이고, 뒤엣것은 비용이 줄어든 자리에 무엇을 놓을지 정한다. 효율이 끝까지 올라가면 비용은 바닥까지 내려가지만, 바닥에 닿은 비용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모두의 노가 똑같이 빨라진 바다에서 차이는 노가 아니라 방향에서 난다.
효율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
가장 먼저, 문제를 다시 묻는 일이다. 효율은 주어진 문제를 빨리 푼다. 하지만 좋은 결과의 대부분은 같은 문제를 더 빨리 푼 데서 오지 않고, 풀 문제를 바꾼 데서 온다. 기계는 "이걸 어떻게 풀까"에 강하고, "이게 정말 풀어야 할 문제인가" 앞에서는 사람을 기다린다. 질문을 바꾸는 순간 효율 곡선 전체가 다른 자리로 옮겨 가는데, 그 옮기는 손은 아직 사람 것이다.
두 번째는 비대칭한 선택이다. 효율은 평균을 좋아한다. 실패를 줄이고 들쭉날쭉함을 줄인다. 그런데 큰 값어치는 대개 들쭉날쭉한 쪽에서 나온다. 잃을 것은 정해져 있고 얻을 것은 열려 있는 선택, 열에 아홉은 빗나가도 하나가 나머지를 다 갚는 선택. 이런 베팅은 효율의 언어로 잘 설명되지 않는다. 평균만 보면 손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판단은 평균이 아니라 그 비대칭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세 번째는 취향이다. 두 결과물이 둘 다 '맞을' 때,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효율이 답하지 못한다. 맞고 틀림을 가리는 일은 빠르게 자동화되지만, 더 나음을 가리는 감각은 그렇지 않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아는 눈은 정답표가 없는 자리에서만 자란다.
네 번째는 회고에서 자라는 복리다. 효율은 같은 일을 반복할 때 빛난다. 그러나 사람의 성장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데서 오지 않고, 끝난 일을 되짚어 다음 판단을 바꾸는 데서 온다. 한 번의 회고는 티가 나지 않는다. 그 회고가 다음 결정을 바꾸고 그 결정이 다음 회고를 또 바꾸면, 어느 순간 남들과 벌어진 거리는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이 거리는 더 빨리 일해서 생기지 않는다. 더 자주 멈춰 서서 생긴다.
AI는 일을 없애지 않고 자리만 바꾼다
AI가 일을 없앤다는 불안이 흔하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제거가 아니라 재배치에 가깝다. 노 젓기는 기계로 넘어가고, 사람에게는 어디로 갈지, 왜 가는지, 닿은 곳이 맞는지를 묻는 일이 남는다.
이 재배치에서 불리해지는 사람은 손이 느린 사람이 아니라, 손이 하던 일만 하던 사람이다. 시키는 문제를 빠르게 푸는 자리는 가장 먼저 기계와 겹친다. 반대로 처음부터 방향을 묻고 문제를 다시 세우고 결과를 따져 보던 사람에게, AI는 노가 아니라 함대를 쥐여 준다. 같은 도구가 누구에게는 일자리를 좁히고 누구에게는 사정거리를 넓힌다. 차이는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쥔 손이 원래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서 갈린다.
그래서 지금 값이 오르는 능력은 더 빨리 하는 법이 아니라, 빨라진 손으로 무엇을 할지 정하는 감각 쪽이다. 효율은 어차피 모두의 것이 된다. 모두의 것이 된 능력은 더 이상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대화를 찾는다
이 질문들은 혼자 책상 앞에서 끝까지 밀고 가기 어렵다. 문제를 다시 세우는 일도, 비대칭을 알아보는 감각도, 취향의 기준도, 결국 다른 사람의 판단에 부딪혀 봐야 모서리가 잡힌다. 효율은 혼자서도 늘릴 수 있지만, 방향 감각은 대화에서 더 빨리 자란다.
그래서 제품과 개발, 그리고 그 위에 AI를 어떻게 얹을지 고민하는 사람들과 일대일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따로 두고 있다. 답을 건네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열린 질문을 맞대 보는 자리다. 비슷한 질문을 안고 있다면, 거기서 만나 이어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