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은 결함이 아니다

Written by Theo2026년 5월 4일 · 3 min read

흔들림은 결함이 아니다를 표현한 일러스트레이션

빠른 팀에서 헤맨다는 감각

빠른 팀의 회의실은 이상한 광학을 가진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듯하고, 한 사람의 말이 떨어지면 두세 사람의 손이 동시에 움직이고, 결정은 어느 사이엔가 내려져 있다. 그 사이에 한 명만 잠깐 길을 잃는다.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그 결정이 무엇에 근거했는지, 자신이 어디에 동의했는지 또렷하지 않다.

이 감각은 능력의 문제처럼 다가오지만, 실제로는 광학의 문제다. 빠른 팀은 자기들끼리 이미 합의된 표지판을 들고 다니고, 그 표지판은 회의 자료에 적혀 있지 않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안 보이는 표지판들 사이를 한동안 걸어야 한다. 그래서 헤맴은 결함이 아니라 위치다.

다만 위치는 영원하지 않다. 위치는 어떤 동작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굳어지기도 하고 풀리기도 한다. 흔들리는 위치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그 위치를 머무는 자리로 만들지, 빠져나오는 길로 만들지 가른다. 흔들림 자체는 결함이 아니지만, 흔들림을 다루는 방식은 종종 결함이 된다.

흔들림은 사적이고, 자리는 공적이다

흔들림과 흔들림의 외부화는 같은 일이 아니다. 책상 앞에서 자기 글을 의심하는 일과, 그 의심을 자신이 청한 회의 자리 한가운데에 풀어놓는 일은 전혀 다른 동작이다. 앞의 것은 사유의 동작이고, 뒤의 것은 자리의 신뢰를 깎는 동작이다.

회의를 청한 사람은 그 자리의 첫 번째 검증자이지, 첫 번째 부정자가 아니다. 자기가 청한 자리에서 자기 손으로 자리를 흔드는 일은 종종 솔직함으로 오해되지만,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는 다른 신호로 닿는다. 다음에 같은 사람이 청한 자리에 앉을 때, 그들은 한쪽 눈으로 자리의 의제를 보고 다른 쪽 눈으로 자리를 청한 사람의 손을 본다. 한 번 흔든 손은 다음 자리를 위해서도 한 번 더 흔들 가능성을 가진 손이 된다.

회의 자리에서의 사과, 좌절의 토로, 확신 없음의 표명은 그 자리의 공기를 사적인 감정의 무게로 끌어내린다. 사적인 흔들림은 1:1 자리, 동료의 책상, 멘토의 시간에 풀어놓는다. 회의 자리는 그 흔들림을 받아주는 자리가 아니다. 회의 자리는 공적인 결정의 자리다. 두 자리를 섞으면 두 자리 모두 흐려진다.

자기를 설득하지 못했다면 자리를 열지 마라

자기 설득이 끝나지 않은 채 회의를 여는 일은 그 자리에서 엎을 일을 미리 약속하는 일이다. 청한 사람이 흔들리면 의제가 흔들리고, 의제가 흔들리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흔들린다. 청한 사람이 자기 의제를 한 번 더 의심한 다음에 자리를 여는 일이, 자리를 연 다음에 의심을 꺼내는 일보다 거의 언제나 작은 비용이다.

미루는 일은 회피와 다르다. 자기가 아직 설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자리를 한 번 미루는 동작은 책임의 동작이다. 그 자리를 그대로 열고서 자리 안에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작은 책임을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눠 갖게 만드는 동작이다. 한쪽은 시간이 늦춰지고, 한쪽은 신뢰가 깎인다. 시간은 회복되지만 신뢰는 잘 회복되지 않는다.

자기 설득이 어렵다고 느낄 때 가장 빠른 길은 자리를 옮기는 일이다. 회의 자리에서 의제 옆에 앉아 의심하지 말고, 책상 앞으로 돌아가 의제를 다시 다듬거나, 옆자리 동료의 손을 빌리거나, 멘토의 시간을 받는다. 거기에서 끝낸 다음에 회의 자리를 다시 연다. 자리는 청한 사람이 흔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자리가 된다.

정답을 끌어내려는 대화는 사고를 깎는다

도구와의 대화는 묘한 함정을 가진다. 도구에게 물으면 답이 돌아오고, 답이 그럴듯하면 머릿속의 빈칸이 채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빈칸은 채워진 게 아니라 가려졌다. 직접 빈칸을 메우는 동작을 한 번 빼먹을 때마다, 다음 빈칸을 메울 근육이 한 번씩 약해진다.

도구에서 끌어낸 답은 자기 안에서 나온 답과 모양이 다르다. 도구의 답은 매끄럽지만 자기 것이 아니라서, 다음 자리에서 그 답을 옮길 때 흔들린다. 자기 안에서 나온 답은 거칠지만 자기 것이라서, 흔들려도 어느 지점부터 다시 잡아야 하는지 안다. 매끄러운 답이 자기 안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이유는, 자기 사고의 거친 버전을 한 번 거치지 않고 도구의 매끄러운 버전을 그대로 옮기기 때문이다.

도구에 묻기 전에 자기에게 먼저 묻는 일, 자기가 먼저 답을 적어보고 나서 도구에게 검증을 부탁하는 일, 그 순서를 지키는 사람의 사고 근육이 자라난다. 순서가 뒤집힌 사람의 근육은 매번 도구의 답을 옮기다가 멈춘다.

매몰된 시간을 버리지 못하면 다음 시간이 깎인다

한 달 동안 쌓은 결론이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올 때, 그 한 달이 가장 무거운 짐이 된다. 한 달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그 한 달을 지키려고 다음 한 달을 추가로 쓴다. 그러는 동안 처음의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된다. 결국 신호가 왔을 때 한 달을 버렸다면 두 달로 줄었을 길이가 세 달이 되어 있다.

매몰된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자라난다. 어제 쌓은 결론을 오늘 버리는 일은 한 칸짜리 후퇴지만, 한 달 쌓은 결론을 오늘 버리는 일은 한 달짜리 후퇴처럼 느껴진다. 그 느낌이 결정을 늦추고, 늦춘 시간이 다시 매몰된 시간을 키운다. 가장 비싸지는 결정은 거의 언제나 가장 늦게 내려진 결정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동작은 진 사람이 하는 동작처럼 보이지만, 늦지 않게 다시 시작한 사람이 결국 가장 빨리 도착한다. 매몰된 시간은 끊을수록 작아지고, 안고 갈수록 커진다.

태도는 본인이 결정한다

지식과 기술은 환경이 채워줄 수 있다. 옆자리 동료가 가르쳐주고, 시스템이 받쳐주고, 시간이 쌓아준다. 그러나 태도는 환경이 채워주지 않는다. 태도는 본인이 결정하는 동작이고, 결정하지 않으면 시간이 대신 결정한다. 시간이 결정한 태도는 거의 언제나 가장 작은 저항을 따라간다.

회의 자리에서 한숨을 한 번 쉬면 그 한숨이 다음 자리에 그대로 따라온다. 자기 설득이 끝나지 않은 자리를 한 번 열면 다음 자리도 같은 방식으로 열린다. 가장 빠른 길로 한 번 도구에 답을 묻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자기에게 먼저 묻는 동작 자체가 어색해진다. 태도는 한 번의 결정으로 굳어지지 않지만, 한 번의 결정이 다음 결정의 자리를 좁힌다.

흔들림은 결함이 아니다. 그 흔들림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결정이다. 결정은 본인의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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