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파는 사람들

#단상/작문
Written by Theo2026년 1월 30일 · 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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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밌는 서비스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능이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쁩니다. 필수가 아닌데 사람들이 씁니다.

행사 등록 플랫폼 Luma가 그렇습니다. 유사 서비스들과 기능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필름 카메라 느낌을 주는 사진 앱 once.film도 비슷합니다. 기능은 단순한데, 감성이 있습니다. 출시 두 달 만에 월 매출 천만 원을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서비스들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 있습니다.

"생필품이 아니라 사치품을 팔아야 한다. 사치품은 취향이다. 취향을 사고 파는 플랫폼이 살아남는다."

꽤 설득력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필수가 아닌 것을 사게 만드는 힘. 그게 취향이니까요.

근데 나는 필수품을 판다

저는 B2B SaaS를 만듭니다. 첫 시작은 세금계산서 관리 서비스였습니다. 현재는 기업의 재무 전반을 더 쉽게 관리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취향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영역입니다. 안 이뻐도 써야 하고, 안 쓰면 법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재밌습니다.

취향을 파는 서비스는 "갖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필수품을 파는 서비스는 "안 쓰면 손해"라고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설득의 언어가 다릅니다.

취향은 감성에 호소합니다. 필수품은 논리에 호소합니다. 취향은 "이거 너무 이쁘지 않아?"이고, 필수품은 "이거 안 쓰면 매달 3시간 날려요"입니다.

결국 같은 질문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둘 다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왜 이걸 사야 하지?"

취향을 팔든, 필수품을 팔든, 사람이 지갑을 여는 이유를 고민하는 일입니다. 방법이 다를 뿐 본질은 같습니다.

취향 쪽은 "없어도 되는 걸 있게 만드는" 일이고, 필수품 쪽은 "어차피 해야 하는 걸 덜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입니다. 둘 다 결국 사람을 이해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둘 다 재밌다

요즘은 둘 다 재밌다고 느낍니다.

필수품을 4년째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이 지루한 일을 덜 지루하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것도 재밌고, 취향을 파는 서비스들을 보면서 "저건 어떻게 저렇게 사게 만들었을까"를 관찰하는 것도 재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취향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습니다. 어떻게 그 감성을 만들었는지, 왜 그걸 선택했는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푸는 사람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