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과 성과의 관계
일하다 보면 한 번쯤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천천히 하세요, 그러다가 번아웃 와요." 야근하는 동료에게 건네는 이 말은 선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충고에는 묘한 전제가 숨어 있다. 번아웃의 원인이 과로라는 전제다.
정말 그럴까. 앞 챕터에서 우리는 일의 구조를 이야기했다. What과 How를 분리하고, 직관을 훈련하며, 모든 구성원이 문제 정의에 참여하는 팀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구조가 아무리 정교해도, 그 안에서 일하는 개인이 소진되면 구조는 껍데기가 된다. 팀의 운영 체계를 논하는 2막의 마지막에, 개인의 에너지 문제를 다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번아웃은 과로가 아니라 헛달림이다
번아웃의 진짜 원인은 과로가 아니다. 열심히 달려가는데 결실이 보이지 않는 상태, 즉 성과의 부재다. 사람은 의외로 바쁜 것 자체에는 잘 견딘다. 마감에 쫓기면서도 눈앞에서 결과물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감각이 있으면, 피로는 피로로만 남는다. 하지만 매일 야근하면서도 프로젝트가 표류하거나, 내가 만든 것이 어디에도 쓰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쌓이면, 같은 업무량이라도 에너지는 급격히 고갈된다.
오히려 조직이 뜨겁게 달리고 있을 때가 건강한 상태일 수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여유와 고요함이 불안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감각을 알 것이다. 열심히 스프린트를 돌다가 갑자기 할 일이 사라진 순간, 해방감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이게 맞나?"라는 불안이다. 그래서 번아웃의 해법은 쉬는 것이 아니다. 물론 휴식은 필요하다. 다만 휴식만으로는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자신이 기여하고 있다는 실감, 즉 성과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상대방의 맥락을 모른 채 자기 경험에 비추어 건네는 조언의 위험이다. "그러다가 번아웃 와요", "제가 해보니까 건강이 최고예요" 같은 말은, 지금 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달리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마다 성과를 내는 방식이 다르고, 시기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는 한정적이다. 그때 해볼 수 있는 것은 그때 해봐야만 한다. 그것도 자신이 충분히 만족할 만큼.
능력 범위라는 울타리
그렇다면 성과를 내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답은 자신의 능력 범위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능력 범위란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한 지식과 전문성의 영역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깊이 이해하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이 있다. 핵심은 그 경계를 인식하고, 경계 안에서 먼저 단단해지는 것이다. 세 가지 질문으로 시작할 수 있다. 내 직무의 책임과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어디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가지 이점을 갖게 된다. 진정으로 이해하는 영역에 집중하니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자기 판단에 확신이 생기니 의사결정이 빨라진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무리하게 뛰어들지 않으니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줄어든다. 그리고 기본 이해가 탄탄한 사람은 인접 영역으로의 확장도 더 빠르다. 결국 능력 범위 안에서 단단해지는 것이 확장의 전제 조건이 된다.
엔지니어 조직에서 이 경계 밖으로 뛰어나가려는 충동은 흔하다. 새로운 기술 스택, 새로운 역할, 새로운 도메인. 놓치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 이른바 FOMO가 능력 범위 바깥으로 성급하게 발을 내딛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순서의 문제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단단하게 다져야 확장이 의미를 갖는다. 기초 없이 넓히는 것은 확장이 아니라 분산이다.
권한과 책임의 지도
능력 범위를 인식했다면, 다음 단계는 자신이 조직 안에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John Cutler가 제안한 Mandate Levels는 이를 위한 유용한 지도가 된다.
Mandate Levels는 업무에서의 권한과 책임을 아홉 단계로 구분한다.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이것이 상하관계나 등급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에 대한 권한의 종류를 구분한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는 정해진 스펙을 그대로 구현한다. 시키는 일을 정확히 수행하는 것이 이 단계의 핵심이며, 여기서 쌓이는 기본기가 이후 모든 단계의 발판이 된다. 중간 단계로 올라가면 고객의 특정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해결하는 영역이 열린다. 더 이상 "이렇게 만들어라"가 아니라 "이 문제를 풀어라"가 주어지는 것이다. 주어진 입출력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다루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질적 전환이 일어난다. 더 나아가면 사업 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레버리지 포인트를 탐색하고 실험하는 단계가 있다. 매출 개선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직접 찾아내고 검증하는 일이다. 그리고 최상위 단계에서는 회사 전체의 장기적 사업 성과를 정의하고 책임진다.
실리콘밸리가 수평적이라고 할 때, 그 수평은 구성원 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 의사결정의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조직이든 의사결정에는 층위가 존재한다. Mandate Levels가 유용한 이유는 이 층위를 투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작은 팀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레벨에 걸쳐 일하는 경우가 많다. 오전에는 고객 문의를 분석하며 문제를 정의하고(중간 단계), 오후에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능을 직접 구현하며(기초 단계), 저녁에는 분기 전략을 논의한다(상위 단계). 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팀의 강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어떤 레벨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의식하는 것이다. 그래야 각 레벨에서 요구되는 판단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성장이 수렴하는 지점
Mandate Levels를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인식하면, 능력 범위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내가 어떤 레벨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알면 그 레벨에서 요구되는 능력이 무엇인지가 보인다. 그 능력이 내 현재 능력 범위 안에 있다면 성과를 낼 수 있고, 밖에 있다면 먼저 학습이 필요하다. 이 판단이 가능해지는 것만으로도 헛달림은 줄어든다.
번아웃은 결국 방향 없는 노력이 쌓일 때 찾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교집합을 찾고, 그 안에서 성과를 내는 경험을 축적하는 것. 이것이 번아웃을 이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2막을 통해 우리는 채용에서 시작해 리더십, 명료함, 피드백, 공정함, 실행 구조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팀을 만들고, 팀을 작동시키고, 팀 안의 개인이 지치지 않는 법까지. 이 모든 기술이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개인의 성장과 팀의 성장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작은 팀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그런데 단단한 팀이 만드는 결과물은 결국 제품이다. 팀 내부의 운영 원칙은 팀이 세상에 내놓는 것에도 그대로 스며든다. 2막에서 팀의 안을 들여다보았다면, 이제는 팀의 밖을 바라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