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배에게 "그때 왜 그렇게 결정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즉시 대답했다. 논리적이고 그럴듯한 이유를 세 가지나 댔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다. 그 이유들은 지금 만들어낸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인데, 질문을 받으니 뇌가 순식간에 서사를 짜맞춘 것이다. 놀라운 점은, 대답하는 순간 나조차도 그것이 진짜 이유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뇌의 기본 작동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반세기 전의 한 실험 덕분이었다.
1960년대, 신경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는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뇌수술 실험을 진행했다. 당시 심한 간질 환자들의 증세를 완화하기 위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corpus callosum)이라는 신경섬유 다발을 절단하는 수술이 시도되고 있었다. 로저 스페리(Roger Sperry)와 가자니가는 이 수술을 받은 환자들, 이른바 '분리뇌 환자(split-brain patient)'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뇌량이 잘리면 좌뇌와 우뇌는 서로 소통할 수 없게 된다. 평소에는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좌뇌와 우뇌에 각각 다른 정보를 주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좌우 반구는 몸을 교차로 지배한다. 오른쪽 시야는 좌뇌로, 왼쪽 시야는 우뇌로 연결된다. 그리고 언어를 담당하는 건 좌뇌다. 이 조합이 실험의 핵심이었다.
가자니가의 초기 연구에서, 분리뇌 환자의 우뇌(왼쪽 시야)에 닭발 사진을, 좌뇌(오른쪽 시야)에 눈 덮인 풍경을 각각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러 장의 그림 중 관련 있는 것을 고르라고 했다. 환자의 오른손(좌뇌)은 닭을 골랐고, 왼손(우뇌)은 삽을 골랐다. 여기까지는 맞다. 닭발에는 닭이, 눈에는 삽이 연결된다.
문제는 이유를 물었을 때 벌어졌다. 말하기를 담당하는 건 좌뇌다. 좌뇌는 닭을 왜 골랐는지는 안다. 자기가 본 닭발 때문이다. 하지만 왼손이 삽을 고른 이유는 모른다. 눈 덮인 풍경은 우뇌만 봤고, 뇌량이 잘려 있으니 그 정보가 좌뇌에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환자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닭을 골랐으니까, 닭장을 청소하려면 삽이 필요하잖아요."
완전히 틀린 설명이다. 하지만 환자는 이 답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좌뇌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가지고 있는 정보만으로 즉석에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자니가는 이것을 좌뇌의 '해석 장치(interpreter)'라고 불렀다.
이후의 실험에서도 패턴은 동일했다. 우뇌에 "웃으세요"라는 글자를 보여주면, 환자는 웃기 시작했다. 왜 웃느냐고 물으면 좌뇌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들이 실험 때문에 매번 여기 오잖아요. 참 별별 직업도 다 있다 싶어서 웃음이 나오네요." 매번 다른 상황, 매번 새로운 이야기. 하지만 하나같이 자연스럽고 확신에 차 있었다.
분리뇌 환자의 이야기가 우리와 무슨 상관일까. 핵심은 이것이다. 뇌량이 잘리지 않은 우리도 근본적으로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가자니가는 분리뇌 환자에게서 이 현상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정상적인 뇌에서도 좌뇌의 해석 장치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을 떠올려 보라. 누군가의 표정을 보고 "저 사람 나한테 화났나 봐"라고 판단한다. 교통 체증에서 불쑥 끼어드는 차를 보고 "저 사람은 성격이 급한 사람이야"라고 결론 짓는다.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은 뭔가 신뢰가 간다"고 느낀다.
이 모든 판단이 순식간에 만들어진 해석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해석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해석 장치가 너무 빠르고, 너무 매끄럽게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해석과 사실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또 다른 초기 연구를 보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 물건 몇 개를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했다. 그리고 이유를 물었다. 사람들은 "색깔이 예쁘잖아요", "질감이 마음에 들어요" 같은 이유를 댔다. 하지만 실험자들이 실제로 조작한 변수와 피험자들의 설명은 전혀 관계가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 이유를 정말로 모르면서도, 완벽하게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설명이 진짜 이유라고 확신했다.
왜 뇌는 이렇게 작동할까. 가자니가의 설명은 이렇다. 좌뇌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본업이다. 바깥 세상을 볼 때, 뇌는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이름표를 붙이고, 분류한다. 의미를 뽑아내고 패턴을 찾는다. 이 작업에 빈칸이 생기면 뇌는 불편해한다. 설명 없는 상태, 원인 없는 결과, 이유 없는 행동. 이런 공백은 뇌에게 일종의 경보다.
그래서 해석 장치는 공백을 채운다. 정보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틀리더라도 일단 이야기를 만든다. 침묵보다는 틀린 설명이 뇌에게 더 편안하다. 이것은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다. 자동으로, 즉각적으로, 그리고 본인도 모르게 일어나는 과정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후배에게 했던 대답도 정확히 이것이었다. 나는 당시의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모른다"는 대답은 뇌가 허용하지 않았다. 질문을 받자마자 해석 장치가 가동되어, 가용한 정보를 끌어모아 그럴듯한 서사를 조립했다. 그리고 나는 그 서사를 진심으로 믿으며 말했다.
이 사실이 불편한가. 나는 처음에 불편했다. 내 판단과 기억과 설명이 전부 사후적으로 조립된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은 꽤 충격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해방감도 있었다. 지금 당신이 확신하는 그 이유, 어젯밤 잠들기 전에 정리한 그 결론, 방금 누군가에게 한 그 설명. 그것이 정말 당신이 만든 것인지, 아니면 당신의 좌뇌가 침묵을 견디지 못해 급하게 지어낸 이야기인지. 한 번쯤 물어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