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가 세계 경제포럼에서 말했다. "인간에게는 이기심과 타인을 보살피고자 하는 두 가지 강한 본성이 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 두 가지 동력이 뒤섞인 사람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고.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다. 나는 이타적인가, 이기적인가? 아니, 애초에 이 둘을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면 수많은 도움 요청을 받는다. CTO를 구한다, 기술 자문이 필요하다, 조언을 듣고 싶다. 메시지가 올 때마다 나는 빠르게 판단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 요청인가, 아니면 여러 후보 중 하나로 나를 리스트에 올려둔 것인가.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선의로 시작한 도움이 때로는 독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일어설 기회를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진정한 도움은 상대가 절실하게 원하고, 내가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안타까움에서 시작한 개입은 연민일 뿐, 사랑이 아니다.
나는 내가 책임지기로 선택한 내 사람들의 행복이 무조건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할 것이다. 전 인류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내 곁의 사람이 불행한데, 어떻게 세상을 구할 수 있는가?
비행기 안전 수칙이 말한다. 산소마스크는 본인이 먼저 착용한 후 옆 사람을 도우라고.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나부터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다는, 가장 현실적인 이타주의다.
새벽 3시, 잠들지 못한 채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엄청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4시간 동안 고민한다. 이것은 이타적인가?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철저히 이기적인 행동이다.
그 사람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이쁘다, 멋지다, 잘한다"는 말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쁘고 멋진 그 사람을 보며 행복한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을 도울 수 없다. 아니, 도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전부를 준다. 시간도, 관심도, 사랑도. 이것이 편협한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모두를 조금씩 돕는 것보다, 몇 명을 완전히 돕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
물 한 방울씩을 여러 곳에 뿌리면 어디도 젖지 않는다. 하지만 한 곳에 모두 부으면 그곳은 완전히 젖는다. 그리고 그 젖은 땅에서 무언가가 자라날 수 있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책이 있다. 주는 사람이 결국 받는다는, 얼핏 보면 순수한 이타주의를 설파하는 듯한 책이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다르다.
성공하는 기버(Giver)는 무작정 주지 않는다. 누구에게 줄지 선택하고, 언제 줄지 판단하고, 어떻게 줄지 계산한다. 이것은 이타적인가, 이기적인가?
답은 '둘 다'다. 그리고 그것이 포인트다. 순수한 이타주의도, 순수한 이기주의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둘이 섞여야 한다. 마치 물과 기름이 아니라, 물과 물감처럼.
관련해서 이전에 짧게 쓴 글이 있다. 기브앤테이크 6장. 이기적인 이타주의자
나는 '이기적인 이타주의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 그래서 그들을 돕는다. 이것은 이기적이다.
하지만 그들을 진정으로 돕기 위해, 내 방식이 아닌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 이것은 이타적이다.
이 역설적인 조합이 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순수한 이타주의자였다면 진작 번아웃되었을 것이고, 순수한 이기주의자였다면 혼자 남았을 것이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 주변 사람들만 돕는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반문한다. "당신은 가족보다 낯선 사람을 먼저 돕는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존재로서의 현실적 선택이다. 나는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를 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내 회사의 고객들, 내 팀원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이들이 나의 우주다. 이 작은 우주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이기적인 이타주의다.
나는 모든 행동과 생각 하나하나에 어떤 영향이 있고 어떻게 발산시킬 수 있는지 명시적으로 짚어가는 습관이 있다.
이것은 계산적이다. 하지만 그 계산의 목적이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될까'라면, 그것은 동시에 진정성이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면 되는 일을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할 수도 있다. 맞다. 하지만 이 복잡한 계산이 결국 더 정확한 도움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 아닐까.
나는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다. 계산적이면서 진정성 있다. 선택적이면서 헌신적이다.
이 모든 역설을 수용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선함이 가능해진다. 나를 위해 남을 돕고, 남을 도우며 나를 채운다. 이것이 내가 찾은 균형점이다.
빌 게이츠의 말이 맞았다. 이기심과 이타심, 이 두 가지 동력이 뒤섞일 때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
다만 여기서 '성공'이란 부나 명예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그것을 보며 나도 행복한 것.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성공이다.
이기적인 이타주의자로 사는 것은 역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는 모두 나를 위해 남을 돕고, 남을 도우며 나를 완성한다.